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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줍

 

​문영강태

삼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다. 탁 트인 길을 마음껏 달리다, 갈림길이 나오면 마음이 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강태의 날들이 와장창- 하고 깨진 건 한 순간이었다. 정확히는 와장창이 아니라, 왕- 왕- 하고 짖는 소리였지만.

*

 오늘도 2층 침대에서 홀로 외롭게 일어난 강태였다. 상태와 문영은 언제 일어났는지 밖에서 도란도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강태가 아침 일찍, 가장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겠지만 요즘은 달랐다. 이게 다 저 놈 때문이었다. 하얗고, 작은 저 강아지 하나 때문에.

 

"먼지. 이리 와."

"먼지, 먼지 아니야. 얘, 얘 이름은 백구. 백구야."

"백구가 뭐야. 얘 이름은 먼지야. 먼지야. 그치?"

"먼지, 먼지는 안 돼. 먼지는 더러운거야. 백구야, 아이 이뻐. 백, 백구도 백구가 좋지? 이거 봐. 꼬, 꼬리 이렇게. 꼬리를 흔드는 건, 좋다는 뜻이야."

"내가 쓰다듬어 주고 있으니까 좋아하는거지. 먼지야. 먼지가 더 좋지?"

 

 요즘 문영과 상태의 관심사는 저 작은 강아지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혼자 편의점에 다녀오던 문영이 데리고 온 녀석이었다. 먹고 싶다던 아이스크림은 어디 가고, 다 젖은 박스를 끌어 안고 온 문영이었다. 우산을 제대로 쓰긴 쓴건지,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와 강아지만큼 쫄딱 젖은 문영 덕분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강태가 다급히 일어나 수건을 건네야만 했다.

 

"먼지나 백구나 둘 다 별론데..."

 

 난장판이 된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강태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원래라면 1층이 강태와 상태의 잠자리고, 2층이 문영의 잠자리였다. 하지만 저 녀석이 들어오고 나서는 강태가 2층으로 쫓겨났다. 문영과 상태 둘 다 잠버릇이 심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괜찮은지 둘은 티격거리면서도 잘 지냈다. 대체 둘 다 잠을 어떻게 자는건지, 이불은 돌돌 말려 굴러다니고 있었고 베개는 이리 저리 눌려 있었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둘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건 당연히 강태의 몫이었다.

 

"백구야, 백구야- 아 이뻐."

"백구 아니고 먼지. 먼지라고 오빠."

"아냐, 먼지 아니고 백구."

"그래, 백구 아니고 먼지."

"백, 백구야. 고문영. 오빠, 오빠 말 들어."

"싫어. 먼지는 내가 데려왔어. 먼지로 할거야."

"이, 이 캠핑카는 내 꺼야. 너, 너 이제 바닥에서 잘래?"

"치사하게 이럴거야?"

 

 이젠 밥 먹는 일보다 익숙한 둘의 싸움이었다. 정리를 마친 강태가 문을 열고 나가자 나란히 앉아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둘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리고 제 집인 듯 편안하게 문영이 품에 안겨 쓰다듬는 손길을 받고 있는 저 놈. 저 자식까지.

 

"가, 강태 깼어? 왜, 왜 벌써 깼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가 물었다. 벌써라고 해봤자 9시였다. 둘 다 잠도 많으면서 요즘은 새나라의 어린이가 따로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아침부터 에너지가 그렇게 넘치는지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시, 시끄러워서 깼어? 시끄러워서? 잘, 잘 잤어? 하는 상태와 다르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는 문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문영의 손에 얌전히 안겨 있는 강아지에게만 시선이 꽂혀 있었다. 작고 붉은 혀로 문영이 손바닥을 핥는 모습이 얄미워보였다. 저 손은 내 건데.

 

"오빠. 오빠가 너무 시끄러워서 깬거잖아."

"고, 고문영. 오빠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뭐지? 너는 예의를 더 배워야 해. 예의를."

"먼지야, 엄마 말이 맞지- 그치-"

 

 문영은 이상하게 저 강아지 앞에서만 애교가 많았다. 작은 몸을 소중하게 감싸 안은 문영이 털로 가득한 얼굴에 입술을 맞추며 다정하게 물었다. 대답도 못하는 저 짐승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싸고 도는지. 심지어 아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이리저리 살피기 바빴다. 저 강아지가 캠핑카에 들어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 문영은 저를 제대로 쳐다봐 준 적도 없었는데. 저 놈이 문영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으이구, 이렇게 예쁜 걸 누가 버리고 갔을까."

"버, 버린 사람은 천 벌. 천 벌 받을거야. 천 벌. 그치 백구야."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영양 상태가 부족했던건지 제대로 짖지도, 걸어다니지도 못하던 강아지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데려간 동물 병원에서 각종 검사와 접종까지 마친 둘은 온갖 고급 사료와 강아지 용품을 들고 돌아왔다. 일주일동안 문영과 상태가 사랑과 관심을 듬뿍 줘가며 고급 강아지 사료들과 간식들로 배 빵빵하게 채워주고, 애정을 듬뿍 쏟아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왕왕 짖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문제는, 강태가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에, 엣취-

 

 코가 간질간질 했다. 약이나 먹어야지.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음에도 강태 쪽으론 시선도 안 주는 문영이 얄미웠다. 저 강아지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어떻게 눈길 한 번을 안 주지? 괜히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다시 캠핑카로 들어갔다. 입술이 부루퉁 튀어나왔다.

 

"저 쪼꼬만 놈이 뭐가 이쁘다고."

 

 정말 솔직히 말하면 이쁘긴 했다. 문영은 평소에 휴대폰을 잘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주 끼고 살았다. 저 강아지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냥 걷는 것 같은데 내 새끼 잘 걷는다며 찍고, 그냥 밥 먹는 중인데 야무지게 밥도 잘 먹는다고 찍고. 애들이나 동물처럼 말도 안 통하고, 떼 쓰고,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게 딱 싫다던 고문영은 어디 갔는지.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오구, 내 새끼. 역시 엄마가 제일 좋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 녀석은 뭘 안다고 문영을 참 잘 따랐다. 비 오는 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인 걸 아는건지, 이 집안의 실세가 누구인지 알아챈건지. 상태도 강아지를 정말 이뻐했지만 문영이 손짓 한 번이면 상태 품에 안겨 있다가도 달려가 문영에게 안길 정도였다. 덕분에 문영은 지금 완전 먼지 홀릭 상태였다.

 문영이 강아지 이름을 먼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했다. 쪼꼬만게, 하얗고, 잘 돌아다니잖아. 먼지 같이. 그럴듯한 말이었다. 쪼꼬만 놈이 뭐 좋다고 좁은 캠핑카 내부를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지. 정말 먼지가 따로 없었다. 강태는 어딜 갈 때마다 바닥에 강아지가 있지는 않은지 잘 살피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강태는 백구나 먼지나 둘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백구가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먼지 덕분에 강태는 알레르기 약을 달고 사는 중인데, 약 먹을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코에 먼지라도 들어간 듯 간질간질- 못 참게 간지러웠으니까.

 

"무, 문영이가 백구 엄마면. 나는? 나는 아빠야? 아빠. 상태가 아빠야."

"오빠가 아빠야?"

"응, 내, 내가 아빠야. 백구야- 상태 아빠야-"

"먼지. 먼지라구 오빠."

"아니야. 백구. 백구가 더 좋아."

 

 문영과 상태의 이름대란은 강아지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내 이름은 뭐가 좋아요! 라고 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듯 했다. 고작 이름 하나로 뭐 저렇게 티격거리는건지. 익숙하게 약을 입에 털어 넣은 강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데 문영이가 엄만데 형이 왜 아빠야? 아빠면 내가 아빠지.

 

"백구야, 아빠야. 아빠."

"먼지라니까? 오빠. 먼지."

"형은 삼촌이지 삼촌. 강아지 삼촌."

 

 약을 먹고 다시 캠핑카 밖으로 나온 강태가 둘의 대화에 말을 얹었다. 사람도 아닌 저 강아지와 가족 관계를 정리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할 건 확실히 해야했다.

 

"문영이가 엄마면 내가 아빠고. 형이 삼촌이지. 내 형이니까."

"삼촌..? 왜? 나, 나는 아빠. 아빠 하고 싶은데.."

"문영이가 엄마라잖아. 그럼 내가 아빠지."

"왜? 왜 강태가 아빠야? 내, 내가 아빠.. 내가 아빠 할래."

 

 그리고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갑자기 강아지의 아빠가 하고 싶다는 상태의 주장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문영이가 엄마면, 내가 아빠. 강태는 왜 상태가 삼촌이어야 하는지, 왜 자기가 아빠여야만 하는지를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생각에 빠졌다. 어.. 그러니까. 왜 그러냐면..

 

"누가 아빠든 무슨 상관이야. 둘 중 아무나 해. 먼지 배고파? 밥 먹을까?"

 

 앙앙-! 문영이 손에 얌전히 안겨 있던 놈이 문영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는 듯 귀엽게 짖어댔다. 으이구 내새끼, 누구 닮아서 이렇게 똑똑한거야. 문영의 말에 타이밍 좋게 짖어댄 강아지 덕분에 문영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아주 좋아 죽네, 좋아 죽어. 강태의 눈에서 레이저가 쏟아질 듯 했다. 누가 아빠든 무슨 상관이 없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내, 내가 먼저 말했으니까. 내가 아빠야. 문영아. 먼지. 먼지 아빠는 나야. 먼지야- 상태 아빠야-"

 

 이 와중에 상태는 강아지 아빠 타이틀을 정말 얻고 싶었는지 먼지라고 부르며 문영에게 다가갔다. 백구라는 이름은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다시 또 강아지 껌딱지가 되어 먼지가 엄마를 더 좋아하네- 아빠를 더 좋아하네- 티격거리는 모습을 보며 강태가 이마를 짚었다. 왜인지 혀를 내밀고 익숙하게 두 사람의 손길을 받고 있는 강아지가 메롱- 하며 자신을 하찮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

 

"어, 강태야. 어쩐 일로 이 형님한테 전화를 다 했어. 여행은 재밌냐?"

"....재수야."

"뭐? 재수야? 이 자식 이거. 형님이라는 호칭은 금새 또 팔아먹었냐?"

"하... 재수 형."

"그래, 강태야. 무슨 일이야. 이 형님이 다- 들어주마."

 

 또 저 털뭉치한테 빠져 하하 호호 하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태가 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에 불을 내린 강태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어깨에 끼고 있던 전화기를 고쳐 들었다.

 

"...강아지 얘기. 들었어?"

"들었지. 먼지? 야 겁나 귀엽더라. 승재씨도 귀여워 죽겠다고 난리도 아니야."

"벌써 그렇게 소문이 돌았어?"

"그럼. 주리랑 아주머니도 난리야. 실물로 한 번 보고 싶다고. 엄청 똑똑하다며? 문영이랑 형이 아주 자랑, 자랑... 근데 진짜 이쁘긴 하더라. 다들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난리야."

".....그렇게 키우고 싶으면 아무나 데려가서 키워주면 안 되나."

 

 강태의 목소리가 다 죽어가고 있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호감에 가까운 강태였다. 하지만 강아지와 같이 사는 건 달랐다. 알레르기를 떠나서 문영과 상태가 강아지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이 너무 컸다. 예전엔 강태를 두고 싸우던 둘이 이제는 강아지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강태는 아주 찬밥 신세였다.

 

"먼지? 야, 너 혹시 먼지 질투하냐 강태야? 어? 그래? 이 형님 생각이 맞는거니?"

"....질투는 아니고. 맨날 둘이 나만 구박하니까..."

"구박? 무슨 구박. 문영이랑 형님이?"

 

 강태를 두고 문영과 상태가 싸우는 모습만 봤을 재수는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었다. 요즘 강태는 뭐만 하면 둘에게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초콜렛을 먹다가 남은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놨을 뿐인데, 그걸 발견한 상태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강아지가 초콜렛을 먹으면 안 되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키워 본 적도 없는데. 그리고, 저 쪼꼬만 애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어떻게 먹어... 억울한 강태가 반론하려 했지만 문영의 '조심 좀 해.' 한 마디에 상처 받은 강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그저께는 자기 전에 알레르기 약 먹으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가 실수로 강아지를 밟을 뻔 했거든? 밟은 것도 아니야. 진짜 발바닥으로 터치? 터치 수준도 아니었어. 그냥 스친 정도였는데 그거 가지고 둘이 얼마나 나를 구박하는지. 아니, 그러게 애초에 거기 왜 누워 있냐고 왜. 나는 그 강아지 때문에 매일 끼니때마다 약 챙겨 먹는데.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지금도 아주 자기들끼리만 하하호호하고 아주! 난 아주 찬밥 신세라니까?"

"...어, 어... 그래... 화가 많이 났네 애가."

 

 말하다 보니 그 때의 억울함이 다시 떠오르는 듯 강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둘 아침 차려주는 사람도 나고, 이부자리 정리해주는 것도 나인데. 아무 것도 안하는 저 강아지가 뭐가 그렇게 예쁜지.

 

"게다가 전에는, 아니 강아지가 이갈이를 하는데. 그래, 이갈이까지는 좋아. 뭐 크면서 다 겪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근데 이갈이를 왜 문영이 손에다 하냐고. 어찌나 물어대는지. 아니, 문영이는 지 손 물려가면서도 귀엽다고 내새끼 내새끼 하면서 싸고 도는데. 내가 먼지한테 문영이 물지 말라고 화 좀 냈다가 얼마나 쓴소리를 들었는데. 아니, 내가 나 좋으라고 이래? 이런 건 초장에 버릇 들여놔야지 된다구. 지금 문영이 손에 멍이 몇 갠 줄은 알아? 아주 밴드가 안 붙는 날이 없다니까?!"

 

 아기 강아지에게는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문제는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문영은 강아지가 자기 손을 물던, 핥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뭘 하든 예쁘다, 잘한다 칭찬해주고 예뻐해주기 바빴다. 덕분에 강태의 속만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갈이도 해 벌써? 많이 컸네. 먼지 데려온지 한 달 정도 됐나?"

"이제 보름 막 지났거든?! 아 그리고. 방금은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아? 문영이가 엄만데 상태 형이 아빠래. 그래서 내가 아빠는 나고, 형은 삼촌이라고 했더니 형이 자기가 아빠한다고, 나보고 삼촌이나 하래! 근데 거기다 대고 문영이가 뭐라 했는지 알아? 누가 아빠를 하던 무슨 상관이냐는거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

"어.. 그래.. 말이 안 되는 것 같네..."

 

 강태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재수의 반응에 점점 영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리가 강태? 하며 물었다. 어, 완전 질투중. 입모양으로 대답을 하자 주리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문영에게 카톡 폭탄을 받고 있는 주리였다. 매일같이 오는 먼지의 사진과 동영상들.. 안봐도 비디오였다. 짧은 먼지의 영상 속에서 조금씩 들리는 문영의 목소리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짧은 동영상에서 보이는 문영의 모습도 이렇게 낯선데,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을 강태가 질투하는 건 뭐. 뻔할 뻔자라고 해야하나.

 

"진짜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먼지냐 백구냐 싸우고 난리도 아니더니. 이제 자기들끼리 엄마 아빠 한다고 가족 놀이나 하고. 왜 내가 삼촌이야 고문영이 엄만데. 재수야, 아. 아니 재수형. 형이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먼지가 너한테 아빠하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 넌 먼지 예뻐하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호칭에 집착을 하냐 넌."

"그게 지금 문제가 아니라 고문영이 엄마인데 상태 형이 아빠라는 게 중요한거잖아 지그음!"

 

 강태가 답지 않게 짜증을 냈다. 고막을 때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재수가 휴대폰을 멀리 떨어트렸다. 어휴,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한다. 강아지 한 마리가 문영도 그렇고, 강태까지. 이렇게 여러 사람 성격을 바꿔 놓고 있었다.

 

"어우, 어우. 알았어 알았어. 너 아빠 해. 아빠. 어우.. 강태야. 너 여태 어떻게 참고 살았니? 이렇게 쉽게 화내고 삐질거면서. 야, 강태야. 그냥 인정해. 너 지금 강아지 질투하고 있네 뭘. 문영이가 너한텐 관심도 없고 먼지만 예뻐해서 지금 완전 질투하는구만 아주. 어휴.. 이래서 사랑이 무서운거다 강태야."

"아 질투 아니라니까?!"

*

 그렇게 손을 꼭 잡고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걸어 캠핑카로 돌아 온 둘이었다. 분명 혼자 걸을 땐 무섭고, 춥고, 외롭고, 길게만 느껴지던 길이 같이 걸으니 짧게만 느껴지는 듯 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아무도 없는 길에서 우산 하나만 나눠 쓰고. 티격태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캠핑카로 돌아오는 동안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 놓고, 먼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한 약속을 했다.

먼지가 문영을 무는 건 확실히 교육 할 것.

강태에게 먼지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줄 것.

강태도 먼지를 예뻐하고, 사랑해 줄 것.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으며 알레르기가 있는 강태를 위해 먼지와 식사는 따로 할 것.

 새끼 손가락을 걸어 약속도 하고, 둘만 아는 도장도 찍었다. 약속은 코 풀고 버리는 휴지가 아니니 둘 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약속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태는 당연하게도 지독한 감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 강태.. 강태 아파? 많이 아파? 약, 약 먹어야 되는데.."

"형, 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가서 먼지나 놀아줘.."

"그래 오빠. 강태는 내가 돌볼테니까 가서 먼지 좀 놀아줘."

 열이 펄펄 끓으면서도 강태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문영이 먼지도 뒤로 하고 강태의 옆에 꼭 붙어 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고문영한테 1순위는 문강태야. 하고 확인해주는 듯한 문영의 말에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뭘 웃어, 웃기는."

"좋아서. 옆에 있으니까 좋다."

 이불 밖으로 문영의 손을 잡고 있는 강태가 엄지로 쥐고 있는 문영의 손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쓰다듬던 강태가 웃으며 손을 뻗자 문영이 익숙한 듯 이불을 들어 강태의 품을 파고 들었다. 이렇게 안겨 오는 작은 몸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 근데 너 감기 옮는 거 아니야?"

"됐어. 이미 걸릴거면 진작 걸렸어야지.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문영의 말이 맞았다. 빗 속에서 상태의 요구대로 뽀뽀도 하고, 강태의 요구대로 키스도 나눴다. 캠핑카로 돌아와서는 약속의 도장도 찍었는데 뭐. 문영이 걱정 말라는 듯 강태의 손을 찾아 쥐었다.

 

 

"고문영."

"응?"

"문영아."

"왜?"

 강태의 품에 안겨 손장난을 치던 문영이 강태를 올려다봤다. 강태가 입술을 내려 문영의 이마에 조용히 입 맞췄다.

"감기 다 나으면. 형이랑, 먼지랑 같이 바다 보러 가자."

"그래. 바다 보러 가자."

 상상만 해도 좋았다. 탁 트인 해변에서 뛰어 노는 상태와 먼지, 문영과 강태. 한동안 산과 들만 달렸으니 오랜만에 바다를 볼 때도 된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강태가 눈을 감았다. 캠핑카 밖에선 상태가 먼지와 놀아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강태의 품에선 문영이 얌전히 안겨 가슴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날 만큼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질투라는 말에 강태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질투할 게 없어서 강아지를 질투하게? 미쳤어?

"어우 네- 네. 아주 잘 알겠습니다 문강태씨. 절대 질투는 안 하시는 것 같네요, 정말. 저는 이제 순덕 어무니랑 주리양과 티- 타임을 즐겨야 해서. 끊어주실래요?"

 재수가 질투에 악센트까지 줘가며 말하자 강태가 씨이, 끊어!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얼떨결에 전화가 끊겨 버린 재수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주리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이야 진짜,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까지 변하냐 어쩜.

"질투 맞는 것 같지?"

"응. 질투를 넘어섰네."

"야 문강태 진짜... 이렇게 안 봤는데."

"강태가 왜?"

 쟁반에 올려진 커피를 들고 온 순덕이 물었다. 재수와 주리가 마주 보고 앉아 고개를 저었다. 모르시는 게 나아요.

"오빠는 강태처럼 변하지 마. 사람 변하니까 무섭다."

"어머, 주리씨. 주리씨나 잘하세요-"

 아침부터 티격태격 말다툼을 한 건 덤이었다.

*

"고, 고문영. 밥 먹어 밥. 밥 먹을 땐 개, 개도 안 건들인다고 그랬어. 먼지도 밥, 밥 먹을 땐 건들면 안 돼."

"그래, 너 밥이나 제대로 먹어."

"응, 먹을거야. 잠깐만. 우리 먼지 밥을 너무 잘 먹잖아."

 익숙한 모습이었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품에 낀 먼지를 떼어놓지 않는 문영이었다. 이번엔 사료를 먹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고 난리였다. 덕분에 밥을 먹던 강태의 코가 다시 간질간질- 간지럽기 시작했다.

ㅇ... 엣취-!!

"침.. 침. 재, 재채기 할 때는 팔로 입을 막고 해야지 팔로. 형한테 재채기를 하면 어떡하지? 이건 매너, 매너가 아닌데?"

"아, 미안..."

"핸드폰 어디 갔지? 햇빛 받으니까 더 이쁘네. 먼지야 여기 봐봐 여기."

 강태가 재채기를 하던, 말던. 문영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저 작은 털뭉치한테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하나뿐인 형은 입 가리고 재채기를 하라고 매너를 지키라고 구박을 하지 않나. 문영은 강아지만 끼고 있느라 눈길도 안 주고.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결국 강태가 들고 있던 국자를 거칠게. 정말 아주 조금 거칠게 내려놓으며 벌떡 일어섰다.

"...나 이제 못 참겠어."

 갑자기 국자를 내팽겨치며 일어난 강태 덕분에 놀랐는지 문영과 상태, 심지어 먼지의 시선까지 강태에게 쏠렸다.

"나 이제 저 강아지랑 못 살겠어. 맨날 알레르기 약 챙겨 먹는 것도 싫고. 둘이 맨날 싸우는 것도 못 참겠어!"

 휴대폰을 낚아채듯 챙긴 강태가 호기롭게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밥 먹다 말고 이게 무슨 일이래.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문영과 상태가 얼음이 된 상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쟤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거야?

"가, 강태.. 강태 어디 가는거지. 어디 가는거야?"

"....왜 저래? 먼지야. 쟤 왜 저러는걸까?"

 점점 작아져가는 강태의 뒷모습을 보던 상태와 문영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먼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으이구 우리 먼지. 놀랐어? 문제는 문영이 강태가 짜증을 내고 가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왜 저래? 진심으로 순수한 궁금증에서 우러나는 말이었다. 문영은 강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러는거야...

*

 아주 멋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온 (본인의 생각) 강태는 지금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이래서 생각이라는 걸 하고 행동해야 하는건데....

 강태는 지금 길고 긴 산길 어딘가에 주저 앉아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온 것까진 좋았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구불구불한 언덕 어딘가에서 캠핑을 하고 있던 것도 잊고 있었다. 1시간 정도를 걸었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에 결국 아무데나 주저 앉아버린 강태였다.

"씨... 어디로 가..."

 여름이 다 끝나가고 있다곤 하지만 여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머리 위로 존재감을 펼치는 중인 태양 덕분에 티셔츠가 땀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 결국 근처 그늘로 피신을 한 강태가 발라당- 뒤로 누워버렸다.

"....괜히 뛰쳐나왔나."

 생각해보면 재수의 말이 다 맞았다. 강아지를 상대로 무슨 질투냐 싶겠지만 지금 이 감정은 질투가 맞는 듯 했다. 언젠가 문영이 팬에게 팬서비스라며 했던 모습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다시 느끼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 때는 사람이었다면 이번은 말도 못하는 강아지가 대상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문영은 생각보다 먼지를 예뻐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이 아직 서툰 문영이었다. 그런 문영에게 온전히 자기만 바라보고, 자신만 사랑해주는 존재라는 건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서 질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질투보다 서운한 감정이 더 컸다.

"어떻게 나한테는 관심을 한 톨도 안 주냐고.."

 강태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이런 날씨에 문영이랑 손잡고 산책하면 딱인데. 방금까지 짜증내고 뛰쳐 나온 사람이 맞는지, 돌아서면 문영이 생각 뿐이었다. 고문영은 지금 뭐하려나. 놀라서 나 찾고 있으려나.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먼지놈이랑 다시 놀고 있으려나. 찌개 한 번 더 끓이면 저녁에 다시 먹을 수 있는데. 저녁에 다시 돌아가야하나? 나 없으면 둘이 밥도 못 먹을텐데. 어떡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태의 정신도 늘어지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자마자 1시간이나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원한 그늘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일단 조금만 자고 생각할까... 강태의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였다. 그렇게 까무룩 잠에 들어버렸다.

*

"가, 강태.. 강태 전화 꺼져 있는데..? 강태.. 어디 갔지? 신고. 신고 해야 하나? 실종 신고. 실종 신고는 몇 번이지? 111? 119?"

"111은 국정원이고. 간첩 신고할 일 있어?"

"간, 간첩? 간첩이 뭐지?"

"오빠는 알 거 없어."

 강태가 캠핑카를 떠난지도 벌써 5시간째였다. 처음엔 금방 다시 돌아오겠지, 갈 곳도 없는데 가봤자 어딜 가겠어? 하는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문영이었다. 강태를 걱정하는 상태를 대충 달래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끝냈다. 먼지와 뒹굴거리며 놀던 문영도 시간이 지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빠, 강태한테 전화 해봐. 문영의 말에 단축 번호 1번을 누른 상태였지만 강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그러면? 강태. 강태 어디 갔지..."

"이씨. 왜 전화도 안 받고 난리야. 곧 비 올 것 같은데. 어디 곰한테 잡아 먹힌 거 아니야?"

"고... 곰? 곰.. 강태 곰한테 잡아 먹혀...? 어.. 안 되는데..."

 문영의 말에 심각해진 상태가 불안한 듯 캠핑카 주변을 이리저리 돌기 시작했다. 비가 올 모양인지 멀리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직 낮인데도 금방 어두워지려는 하늘을 올려다 보던 문영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되겠다. 오빠, 오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문강태 잡아 올게."

"어.. 나 혼자...? 호, 혼자는 무서운데..."

"먼지랑 같이. 둘이 기다리고 있어."

 문영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먼지를 한 번 쓰다듬으며 상태의 품으로 먼지를 넘겨주었다. 커다란 장우산을 하나 챙긴 문영이 집업을 걸쳐 입고는 얌전히 상태 품에 안겨 있는 먼지를 보며 씨익 웃었다.

"먼지야. 엄마가 아빠 잡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곤 강태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문강태, 문강태 어디 갔어- 여러갈래로 나뉜 길도 아니었다. 포장 되지 않은 구불구불 펼쳐진 길을 달리며 문영이 소리 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강태는 지금 말로만 듣던 멘붕을 겪고 있었다. 한바탕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 산들거리던 기분 좋은 바람이 어느새 소름끼치는 강한 바람으로 변해 있었다. 쨍하게 내려쬐던 태양은 어디로 숨었는지 주변이 어두웠다. 얼마나 잔건지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켰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꼭 밧데리는 이런 상황에만 없었다. 켜지지 않는 휴대폰에 절망한 강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한 모양새였다.

"....어떡하지."

 돌아온 길로 돌아가면 되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어디로 왔지. 이 쪽으로 왔었나? 특징이랄 게 없는 길이었다. 포장되지 않은 모래길과 양 쪽에 뻗어 있는 푸른 나무들. 비도 올 것 같고, 휴대폰은 꺼져 있고. 길까지 잃어버리다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디 찬 바람에 자다 깬 몸에 소름이 잔뜩 돋았다.

"씨.. 고문영 보고 싶다."

 처량하게 혼자 길에 앉아 있던 강태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을 쥐고 멀리로 내던졌다. 반팔을 입어 훤히 들어난 맨 팔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된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상태 형과 문영이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개를 파묻고 고민하던 강태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가다가 아닌 것 같으면 다시 돌아가지 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

 감이 오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혹시 모르니까 있던 자리에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묶어두었다. 여기까지 1시간 정도 걸었으니까. 다시 1시간 정도 걷다가 안 나타나면 반대로 2시간 걸으면 되겠지. 단순한 논리였다. 잘못된 방향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

"에이씨, 어디까지 간거야 진짜..."

 문영은 거의 1시간 째 걷고, 뛰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정도 왔는데도 안 보이는거면 진짜. 어디 잡혀간 거 아니야? 문영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동안 오만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최근 강태와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한 적이 없었다. 먼지를 놀아주느라 신경도 못 쓰고 있었다. 뒤늦게 더는 못 참겠다던 강태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대체 어디까지 간거야.."

 문영의 표정이 어두었다. 이미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금방 비가 쏟아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걸치고 나왔던 집업은 어느새 벗겨져 손에 들려 있었다. 강태를 찾아 달리느라 온 몸에 땀이 가득했다. 중간 중간 세차게 부는 바람 덕분에 덥지는 않았다. 대신 강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강태는 겉 옷도 없이 반팔만 덜렁 입고 나갔다. 문영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강태가 혼자 걸었을 길을 다시 걸으며 문영은 여러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강태의 표정이 어땠더라. 무슨 감정이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투 같은데, 이해가 안 갔다. 강아지를 상대로 무슨 질투? 문영이 이해하기엔 아직 많이 어려운 감정이었다.

"역지사지. 고문영. 생각을 하자, 생각을."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라던 주리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문강태였으면 어땠을까. 어디서 주워온 강아지랑 노느라 신경도 안 쓰고. 잠도 따로 자라고 그러고. 그래, 알레르기인지 뭐시기 때문에 약도 먹었지. 아침 차리고 맨날 살림하는데 관심도 안 주고. 놀아주지도 않고. 먼지 밟을 뻔 했다고 구박이나 하고. 음...

"이거 완전 쓰레기 아냐. 인간 쓰레기."

 조금 과격하지만 강태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문영이 달리던 자리에 멈춰섰다. 못 참겠다며 뛰쳐나갈만 하네. 그렇게 문영이 강태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순간, 번쩍- 하고 어둡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우 씨바, 존나 깜짝 놀랐네."

 천둥번개였다. 번쩍거림과 동시에 멀리서 우르르 쾅쾅- 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천둥소리가 스타트라도 되는지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영이 급하게 우산을 펼쳤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1분 1초가 급했다. 경보를 하듯 걷던 문영이 결국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문강태 진짜 찾기만 해. 죽었어 아주...

*

 강태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잘못된 길임을 뒤늦게 깨달은 상태였다. 분명 오는 길에 하얀 꽃이 핀 걸 봤던 것 같은데 걸어도 걸어도 꽃은 커녕 점점 으스스한 길만 나오고 있었다. 외진 곳이라 가로등도 많지 않았다. 겁이 많지는 않지만 소름이 끼쳤다. 번쩍- 하는 소리와 울리는 천둥 소리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리고 빗방울이 하나, 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 일이 꼬여도 어쩜 이렇게까지 꼬이는지. 절로 한숨이 다 나왔다.

"진짜 집 가고 싶다... 집."

 오는 길에 전혀 본 적 없는 기이한 바위들이 나타나자 강태는 미련 없이 몸을 틀었다. 어쩜 골라도 아닌 길을 골랐을까. 그래도 이 길이 아닌 걸 알았으니 이제 가기만 하면 됐다. 반대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언젠가 캠핑카가 나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고문영 보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뛰쳐 나온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감정이 주체가 안 될 땐 셋을 셌어야지. 자책하는 혼잣말도 잔뜩 뱉었다. 이상하게 문영과 관련된 일에서는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문영이가 강아지 이뻐하는 게 뭐 어떻다고. 너도 좀 좋아해주지 그랬냐 바보야.."

 강태도 혼자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영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애교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문영이 먼지 앞에서는 온갖 애교를 다 부리고, 누구를 챙길 줄 모르던 문영이 먼지만은 그렇게 챙겼다. 문영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 먼지를 같이 좋아해주고, 보살펴주지는 못 할 망정 질투하고 미워하는 꼴이라니. 본인이 생각해도 한심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문영이와 함께 하고 싶으면 함께 하면 되는 일이었다. 먼지를 이뻐하는 상태하고는 티격태격하지만 여러 이야기도 나눴고, 먼지를 놀아주느라 같이 땅을 구르기도 했다. 그런 둘 사이에 자연스럽게 껴서 함께하면 되는 걸 질투에 눈이 멀어 노려보기에 바빴다.

"말 못하는 강아지가 무슨 죄야. 이 몹쓸 질투심이 문제지."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에 비를 피하는 것도 포기한 강태였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걷던 강태가 결론을 내렸다. 돌아가면 먼지한테 잘해줘야지... 아, 문영이 손 무는 것만 빼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거였다. 아무리 문영이가 예뻐하고 싸고 도는 존재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였다. 문영이 몸에 상처나는 건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물거면 내 손이나 물던가.

"휴대폰 켜면 이갈이용 장난감이나 사주던가 해야지. 먼지는 장난감 가지고 놀라고 그러고 고문영은 나랑 놀면 되겠네."

 또 자연스럽게 생각이 문영의 얘기로 흘러갔다. 어결문. 어차피 강태의 결론은 문영이었다. 자연스럽게 드는 문영의 생각에 강태가 고개를 저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더니. 이래서 그런 말이 나온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문영의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었다. 몸이 아플 정도로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훔쳐내는 강태의 손이 바빠졌다. 흠뻑 젖은 옷과 거세게 부는 바람의 콜라보로 이가 저절로 떨려왔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더웠는데, 이젠 추워서 난리였다. 이러다 길바닥에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때 쯤 멀리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강태, 어딨어- 문강태!"

 처음엔 너무 보고 싶어서 환청이 들리나 싶기도 했다. 구불구불하게 뻗은 길 사이, 나무 넘어로 문영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귀를 때리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작은 문영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고문영?"

 강태가 달리기 시작했다. 문영의 목소리가 맞았다. 커브길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돌자 멀리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문영의 실루엣이 보였다. 문영도 강태를 발견했는지 강태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들고 있는 문영과 다르게 쫄딱 젖은 강태였다. 문영과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인 강태와 다르게 우산도 내던지며 전력질주를 한 문영이 달려와 덥썩- 강태를 안았다.

"어, 문영아. 나 옷, 옷 다 젖어서. 너 감기 걸리는데..."

"....너 진짜...."

 문영이 내던진 우산 덕에 거세게 내리는 비가 문영의 몸까지 적시고 있었다. 본인은 흠뻑 젖어 온 몸이 차가우면서도 문영이 비라도 맞고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된 강태가 급하게 손을 들어 문영의 머리 위를 가려댔다. 강태의 허리를 끌어 안은 문영이 강태를 끌어 안은 손에 힘을 줬다.

"난 너 진짜... 어떻게 된 줄 알고.... 진짜 죽을래?"

 쏟아지는 비를 최대한 막아내려 애쓰는 강태를 문영이 올려다봤다. 걷는 도중에 강태의 손수건을 발견했을 땐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진짜 곰한테 잡아 먹히기라도 했을까봐. 그렇게 참는 걸 잘하던 안전핀 강태가 못 참겠다며 뛰쳐 나가게 만든 자신을 후회하며 자책도 잔뜩 한 문영이었다. 그 때 먼지 말고 강태를 봐줬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썼었더라면. 강태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살폈더라면. 혹시 강태가 어떻게 됐을거라는 생각에 꾸역 꾸역 눈물을 참으며 달린 문영이었다.

"내가 다신 뒷모습 보이지 말라고 그랬잖아, 나 두고 가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랬는데 왜 혼자 가!"

 

"...미안해."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문영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 진짜, 진짜 너 어떻게 된 줄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하는 문영을 강태가 다시 끌어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문영아."

 문영을 안심 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피곤하고 춥고, 힘들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했다. 오히려 생명줄이라도 된 듯 강태를 끌어 안고 우는 문영 덕분에 가슴이 아팠다. 이 자그만 머리로 얼마나 걱정을 했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너 진짜, 진짜 한 번만 더 나한테 등 보여봐. 아주 죽여버릴거야 내가."

"알았어. 다신 안 그럴게. 응? 문영아.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강태 걱정에 눈물을 잔뜩 머금었으면서도 죽여버리겠다 살벌히 말하는 문영 덕분에 웃음이 터진 강태가 문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이었지만 비를 맞은 문영의 머리가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떨어질 줄 모르고 꽉 안고 있는 문영의 손을 붙잡았다. 감기에 걸릴 사람은 강태 하나로도 충분 했다.

"너까지 감기 걸리면 큰일 나. 우산 쓰자."

"아, 이거."

 그제서야 정신이 든 문영이 손에 들고 있던 집업을 강태에게 건넸지만 문영이 내팽겨친 우산을 다시 주워온 강태가 문영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입어. 감기는 나 혼자 걸려도 충분해."

"난 감기 안 걸려. 속에 열이 많아서."

"됐거든? 너 입어. 넌 감기 걸리면 안 돼. 나 감기 걸리면 고문영 네가 책임지고 나 간호해줘야지."

 언제 눈물 겨운 재회를 했냐는 듯 뻔뻔하게 웃는 강태 덕분에 웃음이 터진 문영이 결국 집업에 팔을 끼워 넣었다.

"너 울다가 웃었으니까 이제 엉덩이에 털 난다."

".....저질."

 말도 안 되는 강태의 농담에 문영이 고개를 저었다. 어쨋거나 문영이 다시 웃으니 마음이 편해진 강태가 집업에 지퍼까지 채운 문영을 확인하곤 문영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얼른 가자. 형 기다리겠다."

"아 맞아, 오빠한테 전화 해야 하는데."

 문영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옆에 찰싹 붙은 강태를 노려봤다. 전에 봤다면 살벌하게 느꼈을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잔뜩 우느라 코는 빨개져서 노려보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몰랐다. 강태의 입꼬리가 눈치도 없이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오빠. 강태 찾았어. 응. 아쉽게도 곰한테 잡아 먹히진 않았네. 어. 먼저 자. 먼지는? 응. 알았어. 강태? 잠시만. 오빠가 바꿔달래."

 귀여운 문영의 모습에 어깨를 끌어안고 싱글벙글 웃던 강태가 갑자기 귀로 내밀어진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

"강, 강태야- 괜, 괜차나? 곰. 곰한테 안 먹혔어?"

"응, 형. 괜찮아.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무, 문영이랑 화해 해. 싸, 싸우는 것보다 뽀뽀가 훨씬 나아 훨씬."

"응. 알았어. 문영이랑 화해하고 얼른 갈테니까 먼저 자고 있어."

"어-"

 한 손으론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론 문영의 어깨를 감싸고 있느라 문영이 내밀어준 휴대폰에 어정쩡하게 귀를 기울인 강태가 싸우는 것보단 뽀뽀가 훨씬 낫다는 상태의 말에 문영을 보며 씨익 웃었다. 먼저 자라는 말에 알았다며 매정하게 끊긴 전화가 서운하지도 않았다.

"형이 너랑 뽀뽀하라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또."

"진짜. 싸우지 말고 뽀뽀하고 들어오라는데?"

"싸우는 것보다 뽀뽀하는 게 낫다고 한 거겠지."

 애초에 싸운 적도 없었다. 혼자 빡친 문강태가 꼬라지 부린거지. 싸운 거 아냐. 하는 문영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눈물 섞인 문영의 표정에 은은히 스며 들어 있던 죄책감을 강태가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능글 맞게 고개를 까딱인 강태의 표정에 장난끼가 가득했다.

"그래서. 뽀뽀하기 싫다고?"

 어우, 백여시. 문영이 손을 들어 강태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곰인 척 순진하게 굴다가 또 이럴 때 보면 아주 꼬리 백개 달린 여우 그 자체였다. 걱정하며 달려왔더니 뽀뽀하기 싫냐며 어깨를 으쓱하는데 왜 이렇게 얄미운지. 결국 까치발을 살짝 들어 짧게 입술을 맞춘 문영이었다.

"뭐야, 끝이야?"

"그럼. 뽀뽀가 쪽 하면 끝이지."

 허. 정말 정직하게 쪽- 소리만 내며 떨어진 문영에 강태가 어이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강태가 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문영의 표정에 강태가 우산을 들고 있는 손을 뻗어 문영의 뒤통수를 끌어 당겨 입을 맞췄다.

"흐읍-"

 빗방울이 쏟아지는 우산 사이로 놀란 문영의 숨소리가 새어나갔다. 문영의 어깨 위에 둘러져 있던 팔은 문영의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우산이 뚫릴 듯 세차게 쏟아지는 빗 속에서 강태가 문영의 입술을 파고 들었다. 놀라 주춤하던 문영도 손을 뻗어 강태를 끌어 안았다. 둘의 입술이 빈틈 없이 맞물렸다. 우산 속 공기가 눅눅했다.

 

 

 

 짧지 않은 키스를 마친 둘이 코를 맞댄 채 서로를 바라봤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쫄딱 젖은 상태로 우산 하나 쓰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강태의 입꼬리가 씰룩거리자 문영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역시,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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